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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권소개

태극권의 창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문헌상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어 지금 무예문화사(武藝文化史)에서는 아래의 세 가지 설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첫째가 무당산 도가선인 장삼봉 창시설이며 둘째는 명나라 말기 무장(武將) 진왕 정 창시설이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태극권경(太極拳勁)의 저자인 왕종악 창시설이다.

 

이 세 가지 설에 대한 여러가지 전설 및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지만 중국의 태극권 연구가들 사이에는 명말 무장이자 하남성 온현 진가구의 제9대 진왕정이 창시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즉 진왕정이 기효신서(중국의 병법서)의 권법에 황정경(道敎經典도교경전)의 원리를 합쳐서 태극권을 창시한 것으로 본다. '진왕정' 이후 14대인 진장흥때 태극권이 성행되기 시작되었다. 진장흥은 태극권의 투로를 간결화하여 태극권 1로, 2로로 정리 현 대적 체계를 만들었다. 이 진장흥의 제자가 바로 양식 태극권의 창시자인 "양로선"이다. 이때서야 진씨 일족에만 비전으로 전해오던 태극권이 비로소 외부인에게 조금씩 전해지기 시작했다.

 

진식 태극권을 일반대중에게 보급하기 시작한 사람은 진가구 17대인 진발과(1887∼1957)이다. 현재의 장문인은 제19대인 진소왕 선생이며 현재 호주에서 활발히 태극권을 보급하고 있다. 이미 수 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태극권은 동양 고대의 도가사상(太極論태극론), 철학, 무술, 양생(養生),호흡(呼吸: 黃庭經황정경 속의 吐納法토납법) 등의 문화 정수를 하나로 하여 명말청초에 하남성 온현 진가구의 진왕정(陳王庭)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었고, 호흡과 권세(拳勢) 그리고 명상을 통해 온몸의 기를 유통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완성인(自然人)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몸짓 중의 하나이다.

 

 

张三丰创拳说

  历史上有关张三丰的传说最多,争论亦最大,众多人称其为太极拳鼻祖,目前,有据可查的主要是源于明末清初黄宗羲的《王征南基志铭》记载:“少林以拳勇名天下,然主搏于人,人亦得以乘之。有所谓内家拳,以静制动,犯者应手即仆,故别少林为外家,盖起于宋之张三丰。三丰之术,百年之后,流传于陕西,而王宗岳为最著。温州陈洲同从王宗乐受之,以教其乡人,由是流传于温州,嘉靖年间,张松溪为最。” [9]

 

陈王庭创拳说

  武术考证家唐豪实地考察了陈家沟,依据陈王庭的遗诗:“叹当年,披坚执锐,扫荡群氛,几次颠险。蒙恩赐,枉徒然,到而今,年老残喘,只落得黄庭一卷随身伴,闲来造拳,忙来时耕田。趁余闲,教下弟子儿孙,成龙成虎任方便。”以上前四种传说有关文字记载主要源于《宋氏家传太极功源流及支流考》手抄本。

 

  关于太极拳起源问题的确有待深人研究,解放以后,大致可以归纳为两类观点:一类认为太极拳是陈王庭所创,发源于陈家沟;一类认为在此之前早有太极拳,大约在南朝韩拱月、程灵洗开始,经唐朝时许宣平、李道子,宋时程必,元时张三丰,明清为王宗岳、蒋发,清中叶陈长兴发展起来。目前,还很难断定太极拳究竟是何人何时创造的,但是可以肯定,太极拳绝非蹴而就, 必然有一个萌生、发展、壮大、成型的过程,是经过数代人的努力形成的,这正也说明了太极拳的源远流长,博大精深。

 

 

 

■ 장삼봉(張三峰)창시설

 

장삼봉 혹은 장삼풍으로 거론되는 사람은 모두 세 사람이 있다. 張三峰(장삼봉)ㆍ張三豊(장삼풍)ㆍ張三?(장삼봉)이 그들로, 중국어 발음으로는 “Zhang-San-Feng”으로 발음과 성조가 모두 같고 다만 이름의 마지막 글자만 다를 뿐이다. 이 중 張三豊은 발음과 성조가 같은데서 오는 오자(誤字)로 볼 수 있다. 장삼봉(張三?)과 장삼봉(張三峰)은 모두 무당산에서 수도하던 도인(道人)이었다고 한다.

 

1) 장삼봉(張三峰)

 

명말청초(明末淸初)의 학자인 황종희(黃宗羲)가 쓴 “왕정남묘비명(王征南墓碑銘)”과 그의 아들인 황백가(黃百家)가 저술한 《내가권법(內家拳法)》이란 책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여기에 따르면, 장삼봉(張三峰)은 북송(北宋) 말기 휘종(徽宗) 시대에 무당산의 도사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휘종이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장삼봉(張三峰)에 관한 전설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꿈에 신인(神人)(일설에는 원제(元帝)라고도 함)이 나타나 권법을 전수하여 주었는데, 이 이후로 혼자 백여명을 상대하여 죽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또 일설에는, 장삼봉은 소림무술에 능하였는데 다시 이를 뒤집어 승화 발전시켜 이름을 내가권(內家拳)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권을 장삼봉이 창시하였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설이 없는 형편이다. 황백가(黃百家)가 지은 《내가권법(內家拳法)》에 의하면, 남송 시대의 왕종(王宗)(장삼봉(張三峰) 보다 약 100년 후)이 내가권을 전승하였다고 한다.<내가권법, 왕정남묘비명, 중국무술사>

 

2) 張三?(장삼봉)

 

일반적으로 무당조사로 일컬어지며, 명사(明史)에 그 기록이 보이는 사람이다. 원말명초(元末明初)에 걸쳐 생존하였다. 한끼에 능히 말밥을 먹을 수 있었고 또한 수개월간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었으며, 예지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천하를 운유(雲遊)하여 거처가 일정치 않았으며, 외모를 신경조차 쓰지 않아 장랍탑(張??)으로 불렸다. 이름이 높았던 만큼 이명(異名) 역시 많다. 금(金)ㆍ통(通)ㆍ삼봉(三峰)ㆍ산봉(山峰)ㆍ현화(玄化)ㆍ현현(玄玄)ㆍ현소(玄素)ㆍ전일(全一)ㆍ군보(君寶)ㆍ군실(君實)ㆍ곤양(昆陽)ㆍ사렴(思廉)ㆍ현일(玄一)ㆍ현현자(玄玄子) 등이 그것이다. 명 나라 태조와 성조(영락제)가 이름을 듣고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숨었다고 한다. 명 영종(英宗) 정통(正統) 원년(1436년)에 “통미현화진인(通微顯化眞人)”으로 봉해졌고, 헌종(憲宗) 성화(成化) 22년(1486년)에는 “도광상지진선(韜光尙志眞仙)”으로 봉해졌고, 세종(世宗) 42년(1563년)에는 “청허원묘진군(淸虛元妙眞君)”으로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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